기능과 아름다움

여행의 마지막 무렵, 바르셀로나의 카사 비센스를 찾았다. 이미 여행으로 꽤 지친 상태였고 입장료까지 내고 들어갔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부를 둘러보기보다는 카페에서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도 입장료를 냈으니 한 번 둘러보자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입장하는 순간 피로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평소 보지못한 이국적인 분위기가 눈에 들어왔다. 무엇이 정확히 아름다운 것인지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공간 자체가 주는 묘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아름다운 공간이 사람의 기분을 바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또 다른 재미를 발견했다. 카사 비센스의 창에는 단순히 보기 위한 장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창의 역할을 하거나 햇빛을 가리는 역할을 하는 요소들이 있었다.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능을 수행하는 요소도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그때부터 내가 어떤 물건이나 공간에 끌리는지 조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단순히 예쁜 것보다는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면서도 아름다운 것 그리고 하나의 요소가 여러 가지 역할을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에 더 관심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유럽 여행에서는 또 다른 측면에서 기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짐의 무게와 부피가 생각보다 중요했다. 항공기를 이용할 때는 무게가 늘어나면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짐을 다시 싸거나 옮길 때도 무거운 짐은 큰 번거로움이 되었다. 이번에는 자전거로 이동해서 그나마 나았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역에서 자전거와 패니어에 실린 짐을 계단으로 옮길 때는 꽤 힘이 들었다.
그래서 여행에서 사용하는 물건도 기능을 유지하면서 더 가볍고 작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백패킹에서 사용하는 BPL(Backpacking Light)이라는 개념이었다. 불필요한 장비를 줄이고, 필요한 장비도 가능한 한 가볍게 구성하는 방식이었다. 8kg 정도였던 장비를 하나씩 줄여 나가면 베이스웨이트를 3kg대까지 낮추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극단적으로 무게를 줄이는 것을 XUL(Extreme Ultralight)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가벼운 장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벼우면서도 필요한 기능을 갖추고 소재와 형태까지 아름답게 만들어진 장비들이 있었다. 이전에도 캠핑 장비나 여러 기구에 관심이 있었지만 가볍다는 것도 기능뿐만 아니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디자인 요소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장비를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그러면서 MYOG(Make Your Own Gear)라는 개념도 알게 되었다. 필요한 장비를 직접 설계하고 만드는 것이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텐트나 침낭, 가방 등을 직접 제작하면서 무게와 기능을 자신에게 맞게 조절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완성된 제품을 단순히 구입하는 것에서 나아가, 내가 필요한 기능을 생각하고 그것을 가장 효율적인 형태로 직접 만들어 본다는 것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이런 매력은 캠핑 장비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 아이폰은 비교적 단순하고 절제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기능이 들어 있다. 많은 기능을 담으면서도 겉으로는 복잡해 보이지 않는다. 기능을 더하는 것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면서 필요한 것을 잘 담아내는 것도 디자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우디의 건축은 아이폰처럼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장식과 색 형태가 매우 풍부하다. 하지만 두 대상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능과 아름다움을 함께 추구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가우디는 풍부한 장식과 형태 속에 기능을 녹여내고 아이폰은 절제된 형태 속에 많은 기능을 담아낸다. BPL은 불필요한 것을 줄여 필요한 기능을 더 가볍게 구현하고 MYOG는 그 기능을 자신의 필요에 맞게 직접 설계한다.
결국 처음에는 단순히 여행 가방을 가볍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건축물을 보고 BPL과 XUL을 찾아보고 MYOG를 알게 되면서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단순히 가벼운 물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끌리는 것은 기능과 아름다움이 함께 있는 것이다. 필요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효율적이고 가능하면 가볍고 작으며 여러 기능을 하나의 형태 안에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 사용하고 싶은 마음까지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앞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기능적이고 효율적이며 가볍고 아름다운 것.
그리고 그 모든 요소가 서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디자인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